생산의 의미, 도시에 묻다.
1967년 완공된 세운상가는 한 때 ‘제조업의 메카’였습니다.
준공 당시 “세운상가에서는 못 만드는 게 없다. 로켓도 만든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그 위상이 대단했습니다. 실제 1980년대 세운상가에서는 애플2 복제품이 판매됐고, 기술자들의 창업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글과 컴퓨터도 세운상가에서 싹을 틔운 회사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유통 구조가 인터넷,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됐고, 세운상가는 쇠퇴의 길로 들어섭니다. 급기야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입니다. 그러나 2014년 서울시는 세운상가 존치 결정을 공식화 했고, 이후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명멸해가는 세운상가에 빛을 드리우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운상가에 숨결을 불어넣는 세운캠퍼스가 자리 잡으면서 이 곳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세운캠퍼스는 서울시와 서울시립대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연합한 단체로, 세운상가를 생산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세운캠퍼스 교장을 맡은 황지은 교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를 만나 도시의 의미와 미래 도시로서 스마트시티가 추구해야 할 가치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세운캠퍼스 교장을 맡고 계신데요. 세운캠퍼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시에서 세운상가 일대를 ‘다시세운’ 이름으로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기관과 기업, 단체와 함께 협업체계를 만들어 갔어요. 서울시립대학교는 전략기관으로 시티캠퍼스를 운영하는 주체로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운캠퍼스로 정착되었습니다. 제가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생산도시’를 주제로 전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운캠퍼스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도시 재생이 이슈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근대화 이후 도시 생산의 기능이 외부로 밀려났다가 최근 다시 도시로 편입되는 추세입니다. 도시가 물리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사회적 역할, 시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할 것인가가 화두로 제시됐고, 제조 현장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건축가들은 세운상가를 대상으로서 늘 관심을 가져 왔어요. 대한민국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족적을 남겼고, 건축사적으로도 아주 의미가 크죠. 세운상가는 국내 제조업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 곳에는 3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을 하신 기술 장인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이 분들이 새로운 산업에서 멀어졌어요. 그러다 최근 다시 세운상가 기술 장인들이 주목받으면서 재해석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술 장인 분들이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파하면서 어떤 시너지가 나오는 거죠. 세운캠퍼스는 다목적 공간인데요, 학생들(서울시립대 건축학부) 수업도 이뤄지고, 인근 미술관과 함께 전시회도 열어요. 또 세운상가 내 기술 장인들과 함께 워크숍도 진행합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기술자 분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셔서 조언을 주시기도 합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리빙랩(living lab)이 이뤄지는 거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지금은 현장과 교육의 시너지의 방향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정보기술을 활용한 건축 디자인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술을 통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맥락에서 스마트시티의 개념과 맞닿아 있는데요, 스마트시티 안에서 기술과 건축이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스마트시티에 대한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시를 구성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해서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전문분야에서도 그에 맞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것 같구요. 건축에서는 예전에는 병원, 교회, 주택 등 공간의 기능에 맞춰 건물이 설계 됐다면, 앞으로는 공간이 삶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건물이 지어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연결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들어 공유 오피스라는 개념도 일 하는 환경에 대한 고민의 산물인 것처럼 말이죠. 스마트시티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설로서 건축이 아닌 시민이 도시에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시티에 대한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시를 구성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해서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전문분야에서도 그에 맞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것 같구요.
스마트시티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설로서 건축이 아닌
시민이 도시에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1984년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 박사는 '병실 창 밖 자연 풍경의 치유효과'에 대해 설파한 바 있습니다. 공간이 사람의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증명된 셈인데요, 공간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도시가 사람들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까요.
건축은 단순히 부동산으로서 거래되고 판매되는 대상만은 아닙니다. 시대를 반영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매체이죠. 건축가들은 대체로 시대의 당면문제를 해결과제로 삼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인구구성의 변화, 기술의 변화, 그런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반영하려는 건축계의 고민이 생겨나지요. 하나의 공간에는 시대를 비추는 다양한 정보가 내포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1인 가구, 1인 기업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공유 오피스도 비슷한 맥락이죠. 1인 기업 등 일하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무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겁니다. 창업,고령화 같은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면 공간(건축)이 매개가 돼 사람과 현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사회의 변화는 결국 공간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적 과정을 섬세하게 봐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공간의 구현을 집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변화는 결국 공간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적 과정을 섬세하게 봐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공간의 구현을 집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운상가 안에 위치한 서울시립대학교 세운캠퍼스의 모습
과학자들의 강연 재능기부로 알려진 ‘10월의 하늘’이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합니다. 대중과의 교류를 통해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전파할 수 있고, 특히 시대와 공명한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한편으로 창작 활동을 자극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월의 하늘’과 같은 프로젝트의 의미와 확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월의 하늘’을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행사가 성사되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뜻을 모은 전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여러 논의가 모여 실체를 이룬 행사죠(웃음). 예전에 제 트위터로 ‘행사를 응원하고 싶은 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을 찍어서 공유해주세요’라는 제안을 트위터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500여 명이 사진을 보낸 적이 있어요. 새벽부터 강연지로 떠나는 길 여명의 하늘부터, 어떤 분은 해외에서 야자수가 보이는 하늘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사진들을 모아서 '이웃효과' 전시회에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강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참여와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교수님이 활동하시는 신경건축학연구회(지난 2010년 출범)는 건축(도시)과 사람(마음/심리)의 상관 관계를 탐구하는 그룹으로 유명한데요, 연구회에서는 주로 어떤 분야(대상)을 조명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련의 활동을 통해 거둔 성과는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회에는 건축 실무자 분들이 많이 오세요. 실무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를 공유하고, 해답을 같이 찾기 위해 토론하고 연구합니다. 회원들 간의 의미 있는 주제를 내놓고, 논문이나 문헌을 읽으면서 담론의 장을 마련합니다. 특히 모임 자체가 굉장히 수평적이고, 격의가 없어서 자유롭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은 기관에 소속된 연구소에서 내놓은 결과물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건축 등 공간의 중요성을 단순히 물리적 환경의 의미 이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건축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경력사항
- 2009 ~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과 부교수
- 2007 ~ 2009: 노스이스턴 대학교 건축학과 연구교수
- 2005 ~ 2006: 하버드대학교 건축디자인대학원 조교
학력사항
- 2007: 하버드대학교 건축디자인 대학원, 박사
- 2002: 연세대학교 주거환경학과, 석사
- 1997: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주거환경학과 복수전공, 학사